운동 끝나고 돌아오면, 공부는 언제 시키지 싶었던 날들
훈련 끝난 저녁, 제가 먼저 무너지던 시간이 있었어요
목요일이었어요. 훈련 끝나고 데리러 갔는데 차 타자마자 잠들었어요. 코 벌렁거리면서. 주차하고 깨우는데 "5분만"이라고 하길래 그냥 주차장에 10분 앉아 있었어요. 핸드폰으로 단톡방 보다가 같은 반 엄마가 올린 거 봤어요. "오늘 수학 한 단원 끝냄 뿌듯" 옆에 문제집 사진이랑 스티커 붙여진 거. 그거 보면서 뒷좌석에 코 골고 있는 우리 애를 봤어요.
집에 와서 씻기고 밥 차리고 머리 말리고 앉혔더니 8시 55분이었어요. 수학 문제집 폈는데 첫 번째 문제 읽다가 연필을 내려놓더라고요. 안 푸는 게 아니라 못 푸는 얼굴이었어요. 눈에 힘이 없었어요.
"그만 자" 하고 덮어줬어요. 그리고 설거지하면서 울었어요. 왜 운 건지 지금도 잘 모르겠어요. 아이가 불쌍해서인지, 내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인지. 아마 둘 다였을 거예요.
2학년 돌라가고 운동을 1년정도 집중했을 때였어요. 그때부터 진짜로 고민이 시작됐어요. 운동을 그만둬야 하나. 공부를 포기해야 하나. 둘 다 시키면 안 되는 건가.
주변 말이 제일 힘들었어요
시어머니가 먼저 한마디 했어요. "운동은 취미로 하는 거지, 공부를 놓으면 어떡하니." 틀린 말은 아니에요. 근데 그 말을 들으면 마치 제가 아이 공부를 일부러 안 시키는 사람 같았어요.
학원에서도 전화가 왔어요. 숙제를 세 번 연속 못 해갔거든요. "어머니, 이러면 수업 따라가기가 좀 힘들어요." 맞는 말이에요. 근데 훈련 끝나고 8시 반에 집에 오는 아이한테 학원 숙제까지 시킬 시간이 어디 있어요. 그 말을 하면 "그러니까 운동을 좀…" 이 흐름이 될 거 같아서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고 끊었어요.
제일 마음이 안 좋았던 건 담임선생님 상담이었어요. "요즘 수업 시간에 피곤해 하는 것 같아요" 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게 운동 때문인지 다른 이유인지 선생님도 모르겠다고 했는데, 듣는 저는 그게 다 운동 때문인 것 같았어요. 그날 집에 오는 길에 운동 횟수를 줄여볼까. 고민했어요.
근데 그때 제가 한 게 더 일을 키웠어요
훈련양을 줄이지는 못 했는데, 대신 제가 잡은 건 공부량을 절대 줄이지 않는 거였어요. 운동을 하든 안 하든 다른 애들 만큼은 해야 한다. 그게 그때 제 생각이었어요. 지금 보면 그건 아이한테 맞는 기준이 아니라 제가 안심하려고 잡은 거였어요.
운동한 날이든 아닌 날이든 수학 2장, 국어 독해 1장, 영어 단어 20개. 매일 같은 양. 훈련하고 9시 다 돼서 돌아와도 같은 양. 결과가 어땠냐면요, 매일 밤 10시 반까지 책상에 앉아 있는데 실제로 푼 건 절반도 안 됐어요. 나머지는 연필 쥐고 졸고 있었던 거예요.
그것도 모자라서 같은 운동하는 아이들은 어떻게 하나 엄마들에게 물어봤어요. 그 집은 훈련 후에도 11시까지 공부를 시킨다고 해서 "아 그렇게 하면 되는구나" 싶었거든요. 근데 그 집 아이는 밤 11시까지 안 자도 멀쩡한 체력이었고, 우리 아이는 10시 면 눈이 감겼어요. 같은 운동을 해도 아이마다 지치는 정도가 달랐는데, 그걸 무시한거죠.
제가 맞추려던 건 우리 아이 상황이 아니라 다른 집 양이었어요. 다른 집이 하는 만큼 시켜야 마음이 놓이니까, 그 분량을 우리 아이한테 그대로 씌운 거였어요.
그래도 달라진 게 아예 없진 않았어요
운동 시작하고 1년쯤 됐을 때, 하나 눈에 띄는 게 있었어요.
훈련 없는 날 저녁에 아이가 컨디션이 괜찮으면, 수학 문제집 2장을 20분 만에 후루룩 끝내더라고요. 예전에는 같은 2장을 1시간 앉아서 겨우 했거든요.
나중에 보니까, 질질 끄는 시간이 줄어든 거였어요. 예전에는 앉아서 한참 만지작거리다 풀기 시작했는데, 요즘은 앉으면 바로 풀어요. 모르면 금방 넘기고, 끝나면 바로 일어나요. 앉아 있는 시간은 줄었는데 실제 푼 양은 비슷했어요.
국어 독해에서도 좀 달라졌어요. 지문 읽고 나서 "이건 이런 얘기잖아"를 자기 말로 하는 게 좀 편해진 거예요. 이게 운동 때문인지 집중력이 좋아진 건지는 몰라요. 근데 운동이 공부를 깎아먹기만 하는 건 아니구나, 그 정도는 느꼈어요.
찾아보니까 CDC에서도 아동·청소년한테 하루 60분 이상 규칙적인 신체활동을 권고하고 있고, 신체활동과 학업 성적 사이에 연관이 있다는 자료를 내놨더라고요. 근데 이건 "운동하면 성적 오른다"는 뜻은 아니에요. 운동이 공부에 꼭 나쁘지는 않다, 그 정도로 읽는 게 맞아요. 저는 이걸 보고 나서 운동을 줄일지 말지 고민하는 걸 멈추고, 운동하는 날 공부를 어떻게 돌릴지 쪽으로 방향을 바꿨어요.
오래 앉아 있는 것보다 읽고 이해하는 힘이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 건 독해 쪽 고민이 커지면서였어요. 그 얘기는 문해력은 공부가 아니라 습관이었다는 글에 좀 더 적어뒀어요.
그래서 우리 집은 이렇게 나눠요
이것저것 해보고 나서 제가 바꾼 건, 매일 같은 양을 밀어넣는 걸 그만둔 거예요. 대신 아이 상태에 따라 네 가지로 나눴어요. 대단한 건 아니고 우리 집 사정에 맞춘 거예요.
운동한 날
최소한만 해요. 수학 1장, 아니면 영어 단어 10개. 15분이면 끝나는 분량이에요. 못 하면 안 해도 돼요. 근데 한 가지, 책상에 앉는 것 자체는 해요. 5분이라도요. 이건 공부를 시키려는 게 아니라 루틴이 끊기지 않게 하려는 거예요. 한번 안 앉으면 다음 날도 안 앉거든요. 그게 이틀 사흘 되면 다시 앉히는 게 진짜 힘들어요.
쉬는 날
여기서 채워요. 운동한 날 못 한 거를 쉬는 날에 해요. 수학 2~3장, 독해 1장, 영어 복습. 근데 이것도 1시간 넘기면 안 돼요. 한번 쉬는 날에 몰아서 시켰다가 아이가 쉬는 날을 싫어하게 됐어요. "오늘 운동 없는 날이야" 했더니 밀린 숙제 한다는 생각에 표정이 어두워지더라고요. 쉬는 날이 벌 받는 날이 된 거예요. 그 뒤로 양을 줄였어요.
대회 주간
새 진도 안 나가요. 새 문제집 안 펴요. 이미 풀었던 것 중에 틀린 거만 다시 봐요. 이게 아이한테도 부담이 없고 저한테도 "아무것도 안 시키는 건 아니니까" 하고 마음이 놓여요. 솔직히 대회 기간에 공부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어요. 아이도 저도요.
시험 직전
훈련을 빼지는 않아요. 차에서 훑어 보거나 대신 쉬는 날에 30분 정도 더 해요. 그게 다예요. 처음엔 이게 너무 적은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의외로 좋았던 게 있어요. 아이가 "시험인데 운동 빠져야 하나"라는 생각을 안 하게 돼요. 운동도 하고 시험도 보는 게 되니까요.
이게 잘 돌아가냐면 솔직히 매번 그렇진 않아요. 대회 기간에 시험이 겹치면 지금도 당황해요. 아이가 컨디션이 안 좋으면 다 틀어져요. 근데 나름 갈피가 있으니까 틀어져도 돌아올 데가 있어요. 예전에는 틀어지면 그냥 매일이 전쟁이었거든요.
초3이 되면서 이런 갈피가 왜 더 급하게 필요해졌는지는 초3이 되니 예전처럼 안 통하더라는 글에도 적어뒀어요.
제가 제일 늦게 고친 건 말이었어요
루틴 바꾸고 나서도 한참 안 고쳐진 게 있었어요. 입에서 나오는 말.
"오늘도 이것밖에 못했네." 이 말을 진짜 입에 달고 살았어요. 아이가 훈련하고 와서 수학 1장 풀고 자면, 이불 덮어주면서 속으로 '또 부족했다' 했어요. 어떤 날은 그게 밖으로 나왔어요. "다른 애들은 학원 두 개 다니면서도 다 하던데." 아이가 눈 감고 있었는데 들었을 수도 있어요.
어느 날 아이가 공부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어요. "엄마, 나 오늘 다 못할 거 같은데, 그래도 해야 돼?" 떼쓰는 말투가 아니었어요. 그냥 포기한 목소리였어요. 공부가 해볼 만한 게 아니라 어차피 못 해도 해야 하는 게 돼버린 거예요. 그 말 듣고 밥하다 말고 가스불 끄고 좀 서 있었어요.
그 뒤로 말을 바꾸기 시작했어요.
"오늘 다 못했네" → "오늘은 여기까지면 된 거야"
"왜 이것밖에 못 풀었어" → "이거 풀었으면 됐어"
"다른 애들은…" → 이 문장은 아예 안 쓰기로 했어요
말을 바꿨다고 속마음까지 바뀌지는 않아요. 지금도 부족하다 싶을 때 많아요. 근데 아이가 좀 달라졌어요. 1장을 풀더라도 찡그리면서 안 풀어요. "엄마 나 이거 다했어" 하고 가져올 때 얼굴이 달라요. 100점을 맞은 건 아닌데 표정이 달라진 거, 그게 양보다 먼저 신경 써야 할 거였구나 싶었어요.
제가 아이한테 제일 후회하는 말, 그리고 어떻게 바꿨는지는 아이 자존감 대화, 제가 가장 후회했던 말 한마디에 좀 더 솔직하게 적었어요.
지금도 흔들려요
이렇게 나눠서 한다고 안 흔들리는 거 아니에요.
단톡방에 "수학 단원평가 100점" 올라오면 심장이 쿵 해요. 아이 시험에서 틀린 문제가 연습 부족인 게 눈에 보이면 "더 시켰어야 했나" 현타가 와요. 이건 뭐 어쩔 수가 없어요.
지난달에 대회 기간이랑 단원평가가 겹쳤어요. 남편이 "이번만 훈련 좀 빠지면 안 돼?" 했어요. 저도 하루 종일 고민했어요. 엄마 카톡방에 물어볼까 했는데, 물어보면 "당연히 시험이 먼저지" 소리 나올 거 같아서 안 물어봤어요.
훈련 안 빠졌어요. 대회 기간 하던대로 했어요. 새 진도 안 나가고, 틀린 거만 복습하고, 시험 전날은 일찍 재웠어요. 수학 90점 받아왔어요. 100점은 아니었어요.
근데 아이가 시험 끝나고 "나 그래도 다 풀긴 풀었어"라고 했어요. 그 말할 때 얼굴이 괜찮았어요. 찡그린 얼굴이 아니라 그냥 담담했어요. 솔직히 10점이 아까운 마음도 있었어요. 근데 시험 끝나고도 공부 얘기를 싫어하지 않는 아이 모습을 보니까, 일단 지금은 이대로 가보자 싶었어요. 맞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3년 뒤에 후회할 수도 있어요.
1년 반 지나고 남은 것
운동한 날과 안 한 날은 공부량이 같을 수가 없었어요. 같게 맞추려고 하면 아이 전에 제가 먼저 지쳤어요. 그래서 나눴고, 나누고 나니 좀 숨통이 트였어요.
양보다 아이 표정을 먼저 봐야 한다는 것...3장을 억지로 채우는 것보다 1장을 안 찡그리고 푸는 게 오래가요. 찡그리면서 3장 푸는 아이는 나중에 책상 자체를 밀어내요.
그리고 한번 정한 방식도 계속 바꿔야 했어요. 학년 바뀌면 안 맞고, 대회 시즌이면 또 안 맞고, 아이 컨디션에 따라 매주 달라요. 딱 정해진 시간표보다 "이 정도면 돼" 하는 나름의 기준이 저한테는 더 쓸모 있었어요.
이것저것 겪고 보니 제일 오래 걸린 건 아이 일과를 짜는 게 아니라 제 조급한 마음이었어요. 다른 집 분량 내려놓는 거, 우리 집 사정에 맞게 기준을 깎는 거, 그게 부족해 보여도 버티는 거요. 잘하고 있다는 확신은 아직도 없어요. 근데 예전처럼 이리저리 휘둘리지는 않아요. 돌아갈 데가 생긴 것만으로도 많이 다르더라고요.
무조건 더 시키는 게 답은 아니라고 느낀 건, 학원 운영을 바꿨던 경험과도 이어져요. 그건 학원을 줄인 뒤, 성적보다 먼저 달라진 건 저녁이었다는 글에 적어뒀어요.